728x90


세상에 이렇게 재밌고 즐겁고 설레는 운동이 또 있을까? 라고 생각되는 시점에 부상을 당했다.

감독님이 "그거 인대 끊어지는 소리야" 라는 애기를 듣고 한참을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토요일이었고 점심시간을 향해가는 시간이라 병원을 빨리 알아보고 가야하는 상황이었다.
당시 열정 땜에 집에서 먼 곳까지 레슨을 간 상태라 다시 집 근처로 오는데만 1시간이 소요가 됐다.
동네 작은 병원에서 엑스레이를 찍고 의사선생님을 만났다.

"아킬레스건이 파열 돼서 수술하셔야 합니다."
"선생님, 수술 말고 치료할 방법은 없나요?"
"완전 파열 돼서 수술 말고 방법이 없습니다. 여기서는 수술이 불가해서 다른 병원 가보셔야 합니다. "

임시 깁스


살면서 이렇게 급작스러운 수술 통보라니...
먼지를 뒤집어 쓴 츄리닝 위로 깁스를 하고 일단 집으로 왔다.
4월 중순이었고 엄마는 김치를 하고 있다가 내 연락을 받고 동생과 같이 집 밖으로 나와 내 짐을 옮겼다. 엄마가 나를 데려다 준 친구들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월요일에 병원에 가니 수술을 해야한다고 했고 수술을 하지 않는 방법도 있지만 그런 경우 운동 능력이 수술할 때보다 떨어진다고 하셨다. 그래서 수술을 하기로 하였다. 누가 보면 선순줄 ㅋㅋㅋㅋ
회사에 병가를 냈고 여기저기서 괜찮냐고 부모님 걱정 많이 하시지 않냐고 연락이 왔다.

수술 전 / 수술 후

"엄마 나 걱정돼?"
"아니. 괜찮겠지 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 괜찮겠지 뭐"
이 대화가 정말이지 위로가 많이 됐다.
모두가 걱정하는데 엄마의 괜찮겠지란 말을 들으니 정말이지 괜찮아 질 것 같아고 별 일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나중에 엄마에게 더 이상 약이 없고 우리가 집에서 노력해보자고 할 때 내가 엄마에게 저 얘기를 편지로 써서 전했다.
대충 내용은 '엄마의 괜찮겠지란 말을 들으니 정말 괜찮은 것 같았어. 엄마도 내 괜찮겠지란 말을 듣고 안심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 우리가 최선을 다해서 엄마를 지킬거야. 엄마 괜찮을거야. 걱정하지마' 라고 했었는데 최선을 다했는데 엄마를 지키진 못 했네..

깁스 풀고, 보조기 차기 전. 이미 근육 차이가. ㅠㅠ

깁스 상태 / 보조기 착용 상태

여튼 그렇게 수술을 했고 깁스를 하고 몇주, 교정기를 하고 몇주 그러다 보니 다리는 굳고 근력은 모두 빠졌다.
그 이후 재활이 시작 되었다.

728x90
728x90

 

9월, 수술을 하고 첫 모임으로 목동 테니스장에 갔다. 

동호회에 친분이 있는 사람이 전혀 없었다. 오랜만에 가려니 민폐끼치게 되지 않을까 조금 위축이 됐다. 그래도 나는 다시 테니스가 치고 싶으니 그런 감정은 뒤로 미뤄뒀다. 5개월 사이에 사람들이 실력이 많이 늘어 충격을 받았다. 내가 수술을 하러 갈 당시에는 다들 서브도 어색하고 게임도 많이 부족했었는데 5개월은 열심히 한 테린이가 성장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나 보다.

 

사람들 실력이 많이 향상 된 모습을 보고 자극을 받기도 했고 무엇보다 결정적으로 열심히 치게 된 계기가 생겼다.

애초에 동호회에서 개인적인 친분을 쌓고 싶지 않아 모임도 나가지 않고 딱 테니스만 쳤었는데 자꾸 나에게 저녁을 먹으러 가자고 하는 사람이 생겼다. 내가 다시 동호회에 나갈 때 주변에 아는 사람이 나를 가르치며 잘 치는 사람이 다시 왔다고 소개했는데 내가 치는 모습을 보면서 속으로 "별론데?"라고 생각돼서 자기랑 같이 치면서 연습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자꾸 나에게 밥을 먹자고 했고 밥을 먹는 자리에서 나에게 같이 대회를 나가자고 했다. 

한번도 대회에 대해서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는데 얘기를 들으니 폐끼치지 않게 열심히 해야겠다란 생각이 들면서 열심히 해보겠다고 했다. 

 

 

그 친구도, 나도 그때부터 테니스에 약간 미치기 시작했다. 우리는 일주일에 5-6회 정도 테니스를 쳤다. 친구는 나보다 조금 더 미쳐 있어서 더 쳤었다. 레슨도 다시 시작하고 주말 레슨도 추가했다. 코트가 없다면 거리가 멀어도 마다하지 않고 다니기 시작했다. 겨울엔 추우니깐 실내 코트를 잡고 크리스마스, 새해 가리지 않고 열심히 테니스를 쳤다. 그렇게 테니스 코트에 가는게 설레서 심적으로 힘든 일들도 다 잊어버렸다.

30살이 넘으면서 내 삶을 두근거리게 한다거나 설레게 하는 일은 없을 것 같았는데 테니스 치러 갈 생각에 회사에서부터 마음이 설레곤 했다. 테린이 대회 나갈 생각에 조합을 맞추다 보니 승률도 꽤 좋았다. 많이 치다보니 어느새 실력이 꽤  좋아져 잘 치는 편에 속하게 됐다. 그렇게 테니스를 치는데 안 느는 것도 이상하지만 말이다. 

그렇게 같이 치는 무리가 생기고나니 테니스가 더 재밌었다. 

 

엄마가 그 즈음 몸이 안 좋았지만 그래도 테니스 치다보니 그런 걱정도 덜 하게 됐었다. 요새는 가끔 그런 생각을 하긴 한다. 그때 테니스 좀 덜치고 엄마랑 주말엔 시간을 보낼걸 하는 아쉬움도 있지만 결국엔 나에게는 엄마와 다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찾아왔다. 

 

4월 이었고 날이 아직 약간은 쌀쌀하기도 했다. 코로나가 점점 심해지고 있었지만 5월에 열리는 테린이 대회를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주말에 레슨을 가서하고 있는데 누가 내 다리에 돌멩이를 던졌다. 

빡 하는 소리와 돌을 맞은 것 같아 뒤돌아 봤는데 아무것도 없었다. 

앞에서 감독님이 혼잣말로 욕을 하셨다. 그리고 나에게 말했다. "그거 인대 끊어지는 소리야" 

 

728x90
728x90

 

테니스를 배우면서 체력도 붙고 매력에 빠지고 있을 때 손가락 수술을 해야했다. 

 

테니스로 인한 부상은 아니고 이전부터 양쪽 손가락에 약간의 문제가 있었다. 병명은 "방아쇠수지염" 인데 대학병원에서 나는 일반적인 "방아쇠수지염"과 상태가 다르다고 했다. 병원에서 수술을 권유하였고 하기로 했다. 양손이 다 문제라 오른손 먼저하고 회복되면 왼손 수술을 할 예정이었다.  

선생님이 수술을 권유했을 때 제일 먼저 물어본 얘기가 "선생님 제가 테니스 치는데 수술하고 나면 테니스 칠 수 있을까요?" 였다. 선생님이 나한테 "선수예요?"라고 했다. ㅋㅋㅋ

한라산 윗세오름 / 수술한 손

붕대를 푸르기 전까진 수술이 잘 돼서 전과 비슷한 상황이 될꺼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재활은 더뎠고 손가락이 생각처럼 접히지 않았다. 한번씩 테니스 채를 잡을 때마다 한손에 꼭 들어오지 않아서 속이 상했지만 재활만 잘하면 괜찮아 질거라고 생각했다. 

재활 중 / 대청봉에서

테니스 덕분에 체력이 진짜 좋아져 쉬는 동안 한라산 윗세오름 - 2번, 대청봉 - 1번 다녀왔다. 다른 사람들 보다 빠르게 올라가서 내려온 기억이 있다. 손이 멀쩡하지 못 하니 다리를 열심히 움직이며 여행을 다녔다. 제주도 3회, 해외여행 3회, 대청봉, 순천, 포항, 부산 진짜 5개월 동안 여행 많이 다녔다. 

 

 

재활 후 최대한 주먹을 쥐었을 당시

재활 속도가 더뎌 손 전문 병원도 같이 다니기 시작했다. 재활은 수술한 대학병원에서 받았는데 재활 받다 새끼손가락이 부러지는 불상사가 있었다. 재활을 받고 난 다음 손이 너무 붓기도 하고 아파서 물어보니 괜찮은 것 같다고 했는데 손전문 병원에 가니 손 상태가 이상하다고 엑스레이를 찍어보자고 했다. 엑스레이를 보니 손가락이 부러져있었다. 병원에 컴플레인을 걸진 않았다. 치료해 주는 선생님이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닐거라고 생각하니 그냥 넘어가자고 생각이 됐다. 

 

쓰면서 수술한지 3년이 돼 가는 시점에 사진을 찍어보니 그래도 전보다 주먹이 많이 쥐어지지만 손가락이 부러져서 그런지 휘어진 모양과 아직도 완벽하게 쥐어지지 않는 손가락을 보니....그래도 5개월 동안 쉬면서 여행도 다니고 인생의 방학 같은 시간을 보냈으니 슬퍼하지 말자라고 생각해본다. 

 

처음 계획했던 양손 수술 계획은 실행이 불가했다. 오른손 수술 후 재활에만 5개월이 소요가 됐다. 그리고 손 전문 병원에서도 지금 수술한 상태로 오른손 처럼 사느니 나중에 심해지면 하더라도 일단은 왼손 상태가 나은거라면 수술하지 말라고 했다. 그렇게 수술 하지 못 하고 더 이상 병원에서도 재활은 그만 와도 될 것 같다고 하는 순간이 9월이었다. 선생님이 재활은 이제 그만 와도 될 것 같다고 할 때 물어본 얘기가.."저 그러면 테니스 쳐도 돼요?"였다. 선생님은 이제 쳐도 된다고 했다. 주먹이 한번에 완벽하게 쥐어지지 않고 왼손으로 오른손을 강제로 주먹을 만들어지면 주먹을 쥘 수 있는 상태였지만 일단 재활이 끝나니 테니스 쳐도 된다는 생각에 마냥 좋았다. 재활이 끝나자 마자 다시 동호회에 나가기로 했다. 

728x90
728x90

 

서남물 하드코드

저 멀리서 큰 파도가 나에게 시련을 주려고 점점 다가오는게 보였고 2018년 5월 결국에 파도가 나를 한꺼번에 덮쳤다. 정말 심리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탈출구가 필요했다. 

어떻게든 시간을 잘 보내고 싶었고 힘든 일들을 다 잊고 싶었고 스트레스를 풀 방법을 찾고 있었다. 

제일 먼저 생각났던게 운동이었다. 원래도 운동을 좋아해서 다양한 운동을 접해봤지만 오랫동안 취미생활로 하는 운동은 없었다. 이번에는 진짜 나한테 잘 맞는 운동이길 바라며 어릴때부터 배워 보고 싶던 테니스를 하기로 마음 먹었다. 마음을 정하고 바로 레슨을 신청 했다. 대기가 있어서 기다려야 했고, 기다리는 동안 테니스 라켓과 운동화도 사놨다. 장비병이란 정신이 힘든 시기에도 고칠 수 없는 병이란 걸 다시 한번 느낀다. 대기 후 2주 정도 뒤에 자리가 났다고 했고 그렇게 테니스에 입문하게 됐다. 

 

 

테니스를 배우고 공을 치다보면 아무 생각도 나지 않고 테니스에 집중할 수 있고 코치님이 잘 친다고 칭찬을 해주시니 더 신이 났던 것 같다. 공을 줍는 것도 좋았고 사람들이 치는 것을 구경하는 것도 좋았다. 테니스장에 있다보면 내가 원래 속해 있던 세상 사람이 아니라 다른 새로운 공간에 와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레슨장이 집에서 걸어서 편도 40-50분 정도 거리였는데 그 긴 길을 걸어다니면서 미친 사람 처럼 달을 보면, 불빛을 보면서 힘든 상황에 대해서 혼잣말을 하면서 곱씹고 곱씹고 했던 것 같다. 그때 테니스를 치고 걸어다니면서 지낸 시간이 참으로 도움이 됐던 것 같다. 

 

 

그렇게 몇 달을 지내다보니 문제됐던 상황들이 완벽하진 않지만 조금 나아지는 것 같기도 했다. 조금 마음이 나아지니 테니스에 욕심이 생기면서 좀 더 잘 치고 싶었다. 사람들과 치는것이 도움이 된다고하여 동호회를 찾기 시작했다. 눈 앞에 당장 동호회가 보여도 인터넷에서 초보는 안 껴준다고 글을 보니 위축이 돼서  어플을 깔고 찾아보는데 가입 조차 하기가 눈치가 보였다. 그렇게 며칠을 어플을 혼자 들락날락거리다 새로운 초보자 모임의 동호회가 개설 된 것을 발견하고 바로 가입을 했다. 가입 후 동호회의 첫 랠리 모임이 있던 날 나도 바로 랠리 모임에 참석을 했다. 진짜 다들 초보인지 랠리가 되지 않았다. 나도 레슨 받을 때 코치님이 쳐주는 공 외에는 다른 사람과 랠리를 해본 경험이 3회도 안 됐기 때문에 공을 치는 것 보다 주우러 다니던 기억만 난다. 그래도 일주일에 2번은 동호회에 꼬박꼬박 참석했다. 

 

어느정도 랠리가 되고 게임을 배워서 조금씩 시작할 때 손가락 수술을 해야했다. 

728x90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