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현실은 냉혹하고,

환상은 따뜻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현실은 냉혹한데 할머니의 손녀의 관계, 희령이라는 도시는 따뜻하다. 

 

도서관 딱지가 붙어 있어 불가피하게 편집

 

 

1. 소설에 대한 느낌

극에서 사실적인 요소는 너무 냉혹하다. 

증조할머니가 살아온 시대, 

할머니가 살아온 시대,

엄마가 살아온 시대,

내가 살아가는 시대.

세상은 많이 변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수 많은 시선들 사이에서 방황하면서 살아간다.

그 시선을 견뎌내기 위해서 차가워 질 수 밖에 없었다.

가장 먼저 그 차가움을 견뎌야 하는 대상은 다름 누구도 아닌 내가 될 수 밖에 없었다. 

 

『엄마는 내가 모든 것을 다 가진 사람이라고 말했다. ~ 나는 항상 나를 몰아세우던 목소리로부터 거리를 두고 그 소리를 가만히 들었다. 세상 어느 누구도 나만큼 나를 잔인하게 대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쉬웠을지도 모르겠다. 나를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을 용인하는 일이.』

 

내용이 어렵지 않고, 

주변에 있을 법한 이야기여서 그런지 편하게 읽힌다고 느껴진다. 

비슷하게 느껴지는 소설로 "시선으로부터"를 읽었는데 그때 소설을 읽을 때와는 다르다. 

묘사도 머릿속으로 그려서 상상이 가능했다. 

글을 아주 읽기 쉽게 써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2. 눈물 점 자극  

엄마가 떠나기 전에도,

엄마가 떠난 뒤에도 누군가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일은 거의 없었다.

엄마의 장례를 치르면서도 나는 소리내어 울어보지 못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 소설이 내 눈물점을 자극했다. 

아마도 엄마, 엄마의 엄마, 엄마의 엄마의 엄마의 이야기라서 그랬던 것 같다. 

 

소설에 나오는 할머니, 엄마의 연령대가 나의 할머니, 엄마의 연령대와 비슷하기도 하고,

지연의 엄마가 극중에서 암으로 수술한 내용도 그렇고,

극 중 할머니와 지연이 만나는 장소가 강원도 여서 그런지

친근하고 내 이야기와 딱 맞진 않아도 내 친구의 이야기 같기도 하고 그런 부분들이 있었다. 

 

읽으면서 엄마 생각이 너무 많이 났다. 

지연과 엄마의 관계와 나와 우리 엄마 관계와는 너무 다르지만.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엄마"라는 단어가 나에게 이제 너무너무 슬픈 단어가 됐다는 걸 깨달았다. 

여태 살면서 "엄마"란 단어는 따뜻하고, 다정하고, 사랑스럽고, 존경하고, 내가 힘들때 언제든 기대고 투정부릴 수 있는 단어였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엄마"라는 단어는 이제 내게 더 이상 현실엔 존재하지 않는 단어가 됐다. 

그 사실 너무너무 슬퍼서 이 책의 독서모임에서 "엄마"란 단어를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날 것 같아 제대로 말하지도 못 했다. 

 

3. 희령  

희령이라는 도시는 실제하지 않는 도시다. 

소설 속의 모든 도시들은 실제로 존재하는 데 작가와 할머니가 만나게 되는 희령이라는 도시는 실제하지 않는다. 

앞에서 말했듯이 현실은 냉혹한데, 환상은 따뜻하다. 

희령이란 도시는 어느 순간 따뜻한 공간이 되어 있다. 

할머니와 증조할머니가 그 곳에 정착하러 갈 때는 그 곳은 증조부의 가족을 찾기위해 찾은 공간으로 가고 싶지 않은 공간이지만 새비 아줌마와 희자가 와서 봤던 바다. 그리고 지연이 어린 날 찾아와서 할머니와 추억을 쌓고 다시 찾은 공간은 따뜻한 공간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지연의 상처가 치유되는 공간이고 지연이 차가움과 마주하면 엄마의 변화를 이끌어 내게 된 공간이다. 엄마는 그곳을 떠났지만 결국엔 희령에서의 지연을 통하여 엄마 또한 변해갔던 것 같다.

 

사실 내 가장 큰 관심은 희령이 실제 도시라면 어디일까? 였다. 

아마도 내 생각에는 그 곳은 '고성' 같다.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 속초에 살았다. 속초 바로 위에 고성이 있는데 한적하고, 피난민들이 속초에 아바이 마을에도 많이 있지만 고성에도 많이 있다. 속초는 실제하는 곳이니 '고성' 정도를 머릿속에 두고 쓰지 않았을까 싶다. 

 

 

4. 현실은 냉혹하고, 환상은 따뜻하다.

어릴때는 할머니를 무척 좋아했고,

10, 20대에는 할머니와 거리가 조금 멀어졌다. 

30대가 되고 할머니, 할아버지도 얼마 남지 않은 생을 조금이라도 기쁘게 해드리고 싶다는 생각에 자주 찾아뵙고 있다.

자주 찾아가서 차를 타고 드라이브도 가고 유명한 카페에서 빵이랑 차도 마시고 오고 맛집에 가서 맛있는 것도 먹고 오고 같이 시골 마트에 가고 병원도 모시고 다녀오곤한다. 

우리 할머니도 소설 속의 할머니와 같은 시대를 살아오고 평생을 강원도에서 살아오셨지만 소설 속의 할머니와는 다르다.  

손녀와 같이 커피를 마시면서 대화를 하는 것이

카톡을 배워서 한다는 것이

가능 할 수 있지만 우리 할머니를 보면 이제 다리가 아파서 많이 걷고 움직이는 것이 어렵고,

정신은 또렷하지만 새로운 문물을 익히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인데.

 

그래서 소설 속의 할머니는 내 생각에는 환상같다.

그래서 소설인 것이겠지만 말이다. 

 

소설 속에서 내 기준 환상으로 보이는 희령, 할머니는 너무 따뜻하다. 

그렇지만 할머니가 해주는 이야기, 지연이 겪는 현실은 너무나 냉혹하다. 

우리 주변에 있을 법한 흔한 일은 너무나 차갑다. 

나는 늘 따뜻한 세상을 원하기 때문에 이 소설이 더 좋았는지 모르겠다.

 

잘 읽히고,

내 감정을 움직였기에 

기억에 남는 소설로 남을 것 같다. 

 

728x90

+ Recent posts